default_setNet1_2

바다가 갈라지는 소매물도 등대길

기사승인 2023.02.24  08:45:19

공유
default_news_ad1

- [수필]김복언/문학동인 섬' Thing 회원. 전 거제대 교수

섬, 눈에 보인다고 언제라도 다가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섬에 도착했다 해도,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쉽게 열리지 않듯이, 매물도 또한 그러했다. 바다 기상에 맞추어 매물도를 몇 번이나 다녀왔지만,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닷길을 건너지 못했다.

매물도는 대매물도와 소매물도가 있는데 소매물도를 등대 섬이라 이름한다. 오늘은 물때도 염두에 두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소매물도에 가기 위해 저구항에 도착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승선 좌석 거리두기로 만석이다. 40분 후에 출발하는 다른 여객선 승선권을 샀다. 기다리기가 지겨워 터미널 주위를 돌아보았다. 명사해수욕장 가는 길목에 수국이 만발하게 피어있어 사진도 찍고, 인생 호떡도 사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소 혼란스러운 분위기였지만 예정대로 여행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섬 여행은 날씨와 여객 사정에 따라 유동적이니, 가끔은 반전이 일어나는 것은 여행의 재미가 되기도 한다.

대한해협을 앞에 둔 소매물도는 섬의 크기는 작지만 아름다운 기암괴석과 자연이 만들어 낸 풍광이 빼어난 섬이다. 두 번이나 가 보았지만 또 보고 싶었다. 섬 자체도 좋지만 갈 때마다 바다가 갈라져 등대섬으로 가는 바닷길을 못 건너갔기 때문이다. 메밀을 많이 생산한다고 해서 매물도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하니 그 또한 재미있다.

배에서 내리자 152미터 높이의 가파른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날씨 탓인지 카페와 음식점들, 해산물을 팔던 난전은 문을 연 곳은 딱 두 곳뿐이다. 휴일이나 휴가철에는 관광객들로 섬 전체가 붐빈다는데 오늘은 하지라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붐비지 않았다. 사람들이 단출하여 오르는 길이 북적대지 않아 좋다.

올망졸망한 작은 집들 사이로 빈집 하나가 보인다. 그 집에서 내려다보면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지겠다. 낮은 담장을 예쁘게 재단장하고 노후를 보낸다면 어떨까. 도회지 삶에 익숙한 아내에게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뒷동산으로 손잡고 오르기도 하고 오밀조밀 텃밭을 가꾸며 살아도 좋겠다. 이런 곳에서는 부질없는 욕심들도 내려놓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못된 성질도 내려놓을 수 있겠다.

사람들도 많지 않은 터라 고요히 생각하고 천천히 바라보고 싶었던 생각과는 달리 이번에도 체력의 한계로 현기증이 나서 얼굴이 창백해져 여유롭게 섬을 즐기기에는 시간이 없다. 오르막길로 이어지던 탐방코스가 끝나고, 매물분교가 있었던 망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비경은 자연과 융합하여 오랜 시간이 만들어 낸 한 폭의 멋진 그림이다.

마주하고 있는 등대섬을 가기 위해 풍광을 따라 해안선을 찾아 다시 내려선다. 가파른 돌계단과 까마득한 높이의 목조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좁고 조용한 해변이 나온다. 두 섬은 물때가 되어야 몽돌 자갈길이 열려 모세의 기적처럼 건너갈 수 있다. 오늘은 운 좋게도 아주 많이 길이 열려 있어 35년 만에 처음으로 건너갔다. 얼마나 감개한 지 건너는 길 가운데 바위에 앉아 모세를 생각해 내고 그 시대 이집트의 상황을 그림처럼 그려 보았다.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려면 약 2시간 정도가 필요한데 등대까지 갔다 오면 도저히 승선 시간이 맞지 않을 것 같아 포기하고 돌아선다. 등대섬 가까이에 갔으나 바라만 볼 뿐. 올라가지 못하고 되돌아와야 하니 아쉬움이 너무 크다. 가까이에 있으나 닿을 수 없어 애를 태우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시간이 부족하여 되돌아오는 길에 접어드니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형장에 가는 기분이다. 바닷가에서 쭉 이어지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오르막길을 기어오르다시피 해야 하기 때문이다. 5미터 정도 올라와서 쉬고 또 쉬고 해서 수십 번을 반복했다. 산 중턱 전망대까지에 올라왔을 때 이제는 살았구나를 외쳐본다. 그늘로 어둠이 만들어진 숲속 길을 걸어 걸어서 최고봉에 도달하여 한숨을 돌리고, 멀리 수평선 너머 우리에게 조공을 바치던 대마도를 찾아보면서 시간을 확인하니 50여 분이나 남았다.

지나가는 등산객이 동쪽으로 가면 새로운 빠른 둘레길이 있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십 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는 둘레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간간이 독사주의 구역 푯말만 보일 뿐. 뻣뻣한 종아리를 끌고 험난한 길을 45분이나 걸어서 출항 3분 전에 항구에 도착했다. 도착했다는 안도감으로 새로운 행복감이 생겨나는 듯했다. 선착장으로 내려오니 나를 반긴 강아지 한 마리가 먼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다. 모양새가 깨끗한 걸로 보아 떠돌이 개는 아닌 듯하다. 어쩌면 볼일을 보러 육지로 나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후 4시 꼴찌 승객으로 승선하자 연락선 선장이 방송으로 출항을 신고한다. 그림 같은 섬 조각들을 하나둘 뒤로한 채 연락선이 떠난다. 피곤이 밀려온다. 눈 감은 채 파도에 흔들린다. 내 삶에도 모세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까. 바람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운 삶이라는 섬. 막막한 바다에 섬이 떠 있다.

김복언
·경남 거제 출생
·목포해양대학교 졸/ 경상국립대학원, 인제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졸
·한국문협 회원, 거제 문협 이사, 계룡수필 회원, 눌산 창작교실 수료
·2017『문예비전』시 겨울호·2020『문학세계』9월호 수필 신인상 등단
·경상국립대학교 해양연구소 우수논문상 수상
·22년 (사)세계 문인협회 문화예술공로상
·‘비 오는 날 몽당연필 소리’시집 등
·전 거제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뉴스앤거제 nng@daum.net

<저작권자 © 뉴스앤거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3
default_setImage2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